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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 값 올랐으니 SW 깎아라 — 공공 IT 예산 구조가 중소 SW기업을 삼키는 방식

AI 수요 급증으로 서버 가격이 3.5배 뛰는 동안 공공 IT 예산은 그대로다. 그 차액을 누가 메우고 있는지, 왜 국내 중소 SW기업만 당하는지 뜯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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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서 눈에 들어온 포인트

전자신문 보도에 따르면, 공공 IT사업 현장에서 “HW 값이 올랐으니 SW 개발비를 깎아라”는 압박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내 SW기업 A사는 최근 공공사업 수주 기업으로부터 SW 공급가를 절반 이하로 낮추라는 요청을 받았고, 손해를 감수하고 참여했다. B사 대표도 “HW 가격 급등 부담을 상쇄하려는 압박이 갈수록 거세다”고 전했다.

원문 기사:
HW 급상승에 SW가 희생양… 공공 IT사업 ‘단가 후려치기’에 우는 중소기업 — 최호 기자


왜 지금 이 일이 벌어지는가

구조를 먼저 보면 이렇다. 공공사업 예산은 사업 수행 전년도 하반기에 편성된다. 작년 10월에 잡힌 100억원짜리 프로젝트라면, 그 시점 기준 장비 단가로 예산이 나온다.

문제는 그 사이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AI 관련 수요 급증으로 메모리 가격이 뛰고, 공급망 불안과 환율 변동까지 겹치면서 x86 서버 가격은 1년 새 약 3.5배 올랐다고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ITSA)는 밝혔다. 20억원으로 잡혔던 HW 항목이 40억원으로 튀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데 공공사업은 예산 증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발주처는 총 예산을 바꿀 수 없고, 사업자는 HW를 포기할 수 없으니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조정 가능해 보이는’ 항목에서 깎는 것. 그게 SW 라이선스비와 개발 인건비다.


왜 국내 중소기업만 당하는가

이 구조에서 흥미로운(?) 비대칭이 하나 있다. 같은 프로젝트 안에 외산 SW도 있고 국내 SW도 있는데, 외산 SW기업은 단가 협상 자체를 거부한다. 글로벌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들이라 ‘싫으면 쓰지 마’가 가능하다.

반면 국내 중소 SW기업은 다르다. 대형 사업자나 발주처 요구에 “거절할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A사 대표의 말이 정확히 이 처지를 요약한다. “이미 우리 제품을 사용 중인 곳에서도 윈백 위험 때문에 마진 없이, 혹은 적자를 보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공급할 수밖에 없는 처지.”

즉, 이 비용 전가 구조는 무작위가 아니다. 협상력이 없는 쪽을 정확히 골라서 짐을 떠넘기는 방식이다.


제도가 있긴 한데, 강제성이 없다

업계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지점은 일관되다. 표준 계약서가 10년 전부터 있었는데 현장에서 이중 계약과 가격 인하 압박이 여전하다는 것. KAIST 김숙경 교수는 “강제성이 없다 보니 현장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짚었다.

이 말이 핵심이다. 있는데 안 지켜지는 규정은, 없는 것과 실질적으로 같다. 오히려 ‘표준 계약서가 있다’는 사실이 면죄부처럼 작동해서 문제를 덮는 데 쓰이기도 한다.

김 교수의 제언처럼 표준 계약서를 성실히 이행하고 상생 협력을 실천한 기업에 평가 가점을 확대하는 방식이 실효성 있어 보인다. 벌칙보다 인센티브가 먼저 움직이는 게 현실적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 예산 체계가 AI 시대를 못 따라가고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SW기업의 억울함 그 이전에, 공공 IT 예산 체계가 현실과 괴리됐다는 데 있다.

AI 수요가 이렇게 빠르게 변할 줄 1년 전에 아무도 몰랐다는 건 핑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공급망 불안과 환율 변동이 일어나도 예산을 유연하게 늘릴 방법이 없다”는 건 이미 예견 가능한 리스크였다. 추경이나 사업비 증액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 없이는, 이 문제는 HW 가격이 오를 때마다 반복될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해 초부터 이 문제를 인지하고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는 업계의 지적은 꽤 무겁게 읽힌다. 결국 정책이 한발 느리면 그 공백을 사업 현장의 약자가 채우게 된다.


내가 더 신경 쓰이는 부분

이 구조가 반복되면 국내 공공 IT 생태계에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하나는 SW 품질 저하다. 손해 보는 사업에 최고 인력을 배치하는 기업은 없다. 단가 후려치기로 수주한 프로젝트는 결국 품질로 대가를 치른다. 발주처는 나중에 유지보수 문제로 돌아오는 비용을 감당하게 된다.

둘은 기술 독립성 약화다. 국내 SW기업이 공공사업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투자도, 인재 유치도 어려워진다. 그 자리는 결국 가격 협상을 거부할 수 있는 외산 기업이 채운다. 외산 SW 의존도가 높아지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온다.

‘예산이 없으니 SW를 깎는다’는 단기 처방이 장기적으로 얼마나 비싼 선택인지, 정책 입안자들이 더 선명하게 봤으면 한다.